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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군위안부 심미자 할머니 "싸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무궁화 자매회 전 회장
김두수 시민기자  |  news@sn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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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01.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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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내 싸움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15살 종군위안부 끌려가...한의 세월 몸서리 일본정부 공식사과.정당한 배상 꼭 받아야죠 <무궁화 자매회 전 회장 심미자 할머니> "광복 50주년의 기념행사가 곳곳에서 펼쳐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속에 반드시 확인돼야 할 것은 일제의 침략만행은 50년이 지난 지금도 치유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저의 싸움은 치욕의 역사를 잊지 말자는 것이며 만행의 댓가는 반드시 책임을 지워 다시는 이같은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아야한다는 민족적 다짐이어야 합니다." 자신이 겪은 종군위안부의 실태를 폭로하고 일본정부를 상대로 힘겨운 투쟁을 벌이고 있는 심미자 할머니(72)의 광복 50주년은 남다르다. "최근 일본 민간단체로부터 위로금 2000만엔(약 1억5000만원) 지급유혹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정부의 공식적인 채널을 통하지 않고는 어떠한 보상도 원치 않습니다. 일본인들의 동정어린 보답을 받아 들이는 것은 50년전 당시의 찢어지는 가슴앓이를 또다시 겪는 꼴이 될 것입니다." 일본의 환경단체 등 9개 민간단체의 초청으로 지난달 27일 일본 방문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심할머니는 지나 92년부터 7-8회에 걸쳐 종군위안부 명예회복과 인권유린에 대한 정당한 배상을 요구하며 일본을 건너다녔다. "두얼굴을 가진 일본인들에게 반드시 공식사과를 받아내고 일본 정부로부터 내 청춘과 삶을 앗아간 댓가를 공식적으로 배상받겠다"는 것이 심할머니의 한결같은 요구이자 싸움 내용이다. 걸음걸이조차 힘겨운 심할머니는 일본 현지 9군데를 돌아다니며 당시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일본정부를 정면 공격했다. 심할머니는 일본을 방문중일때 고위공직자,공무원,일본인들이 모인 연설회에서 "소학교 5학년때 아무것도 모른 채 일본에 끌려와 내 삶은 만신창이가 됐는데도 간사한 일본인들은 나를 향해 손가락질 하는 경우가 있다. 그렇다면 아무런 물정도 알지못한 채 강제로 끌려와 인생이 망가진 것이 내 잘못인지 아니면 만행을 저지른 일본인들의 잘못인가"라는 질문을 했고 누구하나 대답에 나선 사람은 없었다. 심할머니가 복받치는 설움을 마른 눈물 훔쳐가며 털어놓는 실상은 차마 글로 표현하기조차 어렵다. <사타구니 총쏘고 가슴 도려내기도> 황해도 연백에서 태어난 심할머니는 소학교5학년(15)때 일본 형사에 의해 종군위안부로 끌려갔다. 당시 동양자수실력이 남다른 심할머니는 한국지도에 무궁화자수를 놓고 일본지도에는 벚꽃이 아닌 나팔꽃 자수로 작품을 만들었다는 이유였다. 순순히 일본형사의 말을 듣지 않은 심할머니는 전기고문과 뜨개질용 대나무 바늘로 손톱사이를 찔러넣는 잔악한 고문에 혼절한뒤 정신이 깨어났을 때는 일본 후쿠오카의 일본부대에 내동댕이쳐진 상태였다. 심할머니의 생활은 이때분터 일본인들에의해 이끌려 갔다. 처음엔 얼굴이 예쁘다는 이유로 고급간부들의 요구를 받았지만 얼마후부터는 적은 경우 하루에 20-30명,많은 경우 40명 가량의 일본군을 상대해야 했다. 당시의 의료체계가 엉망인지라 함께 있던 동료들은 대부분이 성병에 감염되어 고통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지경이었다. 그러나 전쟁에 사로잡힌 일본인들은 인간의 양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서슴없이 저질렀다. 몸이 아파 일본인을 상대하지 못한 종군위안부는 사타구니에 총을 쏘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고 또 가슴을 도려내는 악마와같은 짓들이 눈앞에서 거리낌없이 일어났다. 이런 고통속에서 심할머니는 6년여 세월을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 일본에서 해방을 맞이했다. <일제만행 역사에 반드시 기록해야> 한국(조선)으로 돌아올 생각은 엄두도 내지 못한채 현지의 한 공장을 찾아가 숙식제공을 약속받고 운동화 밑창에 풀붙이는 일을 했다. 2년여동안 숙식이 해결됐으나 종군위안부 출신이라는 과거가 들통나 공장에서 쫓겨난 심할머니는 인근 실크공장에서 4년여동안 이를 악물고 생활했다. 일본에 끌려간지 13년째 되는 1953년 어느날 시모노세키를 출발한 밀항선이 부산 앞바다에 도착했다. 그러나 심할머니를 반겨주는이는 아무도 없었다. 6.25전쟁으로 인해 고향가족들의 소식은 찾을 길이 없었다. 열매 맺지못한 한 여인의 기구한 삶은 수십년이 흘러 세상에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온마음 구석구석을 차지한 일본인들에 대한 분노는 식을줄을 몰랐다. 칠순이 훌쩍넘은 나이에도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밝히는 심할머니는 아픈기억을 더듬으며 자초지종 얘기를 꺼낼때는 백발의 인생을 누리면서도 설움의 눈물을 닦느라 연신 옷소매로 얼굴을 가린다. 심할머니는 그동안 종군위안부 60여명으로 구성된 무궁화 자매회회장직을 역임하며 피해동료들의 인권유린에 대한 진상규명요구와 명예회복을 위한 일본정부의 공식사과를 받아내기위해 바삐 움직여 왔다. 국가지원금과 성남시의 협조로 생활비정도를 해결해 나가는 심할머니는 몇년전부터 정신적.물질적 도움을 건제준 고위공직자들의 이름을 거론하며 고마움의 표시를 잊지 않는다. "설마 저놈(일본)들이 우리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다해도 죽을 때까지 개별적인 화해보상금지급은 용납하지 않겠다"며 "반드시 공식사과를 통해 우리의 아픈 시련이 역사에 기록돼 후세들에게 정확한 실상을 알려줄 수 있도록 사워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심할머니의 광복 50년 맞이는 지난해에 이어 또다시 아픔의 연속이며 아직도 치유되지 못한 일제에 대한 민족적인 분노이기도 하다. <종군위안부 찾는이 없어> 광복 50주년을 맞아 경축행사가 잇따르고 있으나 고아복을 아픔으로 맞이해온 종군위안부 위안행사등은 관할관청 관계부서의 특별지원이외에는 전무한 실정. 성남관내에만도 수정구 태평동에 거주하는 심할머니를 비롯 진모(73),한모(76),임모(67)할머니등 4명의 가슴저린 할머니들이 거주하고 있지만 이들을 찾는 이는 관할부서 관계자 외에는 아무도 없다. 중앙정부차원에서조차 소극적 대응으로 이들의 아픈시련을 감싸주지 못한 시점에 가까운 이웃들의 따뜻한 나눔의 정이 아쉬운 지금 동정어린 몇푼의 돈이 아닌 아픔을 함께하는 미덕이 보여질 때라는 설명. 성남뉴스< 저작권자 © 성남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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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cot
글로만 봐도 일본군의 만행에 치가 떨립니다.. 하루 빨리 정부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손 놓고 있을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해결방안으로 상처받은 할머니들의 마음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하는 바람입니다.
(2014-06-30 19:2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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