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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아래에 있는 '성남시'신정일의 새로 쓰는 택리지...옛 백제의 시조 온조왕이 도읍하였던 곳
김두수 기자  |  news@sn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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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3.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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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 서쪽에 광주가 있다.

석성산에서 나온 한 가지가 북쪽으로 뻗어내려 한강 남쪽에 가서 된 고을로 광주의 성읍은 만 길이나 되는 산꼭대기에 있다.

옛 백제의 시조 온조왕이 도읍하였던 곳이다.

성 안쪽은 낮고 평평하지만 바깥쪽은 높고 험하여서 청나라 군사들이 처음 왔을 때 병기라고는 날(刃)도 대보지 못하였고 병자호란 때도 끝내 성을 함락하지 못하였다.

인조가 그 성에서 내려와 항복한 것은 양식이 떨어지고 강화도가 함락되었기 때문이다.

   
▲ 남산타워(원내)가 육안으로 보이는 동장대지

   
▲ 동장대지에서 벌봉방향

   
▲ 아무도 없는 동장대지

   
▲ 동장대지에서 광주방향 산세

   
▲ 신지옹성 바라본 계단길

   
▲ 동장대지 가는길 신지옹성에서 올려다 봄

   
▲ 신지옹성과 산세

   
▲ 동문위 송암정 자리

   
▲ 역광 동문

   
 

   
▲ 성곽길

   
▲ 명품능선과 뒤 수어장대

   
▲ 성곽 들어서는길

   
▲ 계곡길 바위...여름과 겨울

병자호란이 끝나고 강화가 결정된 뒤에도 남한산성을 외적에게서 막아줄 중요한 요충지라고 여긴 인조는 성안에 아홉 개의 절을 세워 승려들을 살게 하고 총섭(總攝)한 사람을 두어 승대장(僧大將)으로 삼았다.

해마다 활쏘기를 시험하여 후한 상을 주는 까닭에 승려들은 오로지 활과 화살로써 일과를 삼았다.

조정에서는 나라 안에 승려가 많은 까닭에 그들의 힘을 빌려 성을 지키고자 했던 것이다.

성안은 그리 험하지 않지만 성 바깥 산 밑은 살기를 띠었다. 또 중요한 진(鎭)이라 만약 사변이라도 있으면 반드시 전쟁터가 될 지역이므로 광주 일대는 살 만한 곳이 못 된다.

이처럼 『택리지』에 광주의 형승이 “한수(漢水)의 남쪽에 토양이 기름지다”라고 실려 있고, 고려 말의 문신인 유백유는 “빼어난 기운은 정기를 저장하여 준걸을 낳았으니 조선 인물의 빛이 있구나”라고 노래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많았는데 안정복에게서 배운 정약전, 정약용, 홍유한과 그 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 광주를 기반으로 그들의 학문을 발전시켰다.

이곳 광주를 두고 여러 말들이 전해져온다. ‘광주 사람들은 남한테 돈을 꾸지도 않고 빌려주지도 않지만 광주 사람한테 돈을 빌리면 안 갚고는 못 배긴다’는 말은 그만큼 기질이 세다는 뜻이다.

또 ‘광주 생원 첫 서울’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촌 영감이 서울에 처음 가서 어리둥절하듯이 정신을 못 차리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우리나라 산성 중 가장 보존이 잘되고 서울 사람들이 즐겨 찾는 남한산성은 성남시 북동쪽에 있는 조선시대의 산성이다.

이 산성 아랫자락에 자리한 성남시는 1946년 광주군 중부면 성남출장소가 설치되었다가 철거 문제로 우여곡절을 겪은 뒤 1973년에 성남시로 승격되었다.

사적 제57호로 지정된 남한산성은 북쪽의 개성, 남쪽의 수원, 서쪽의 강화, 동쪽의 광주 등 서울을 지키는 4대 외곽 가운데 동쪽에 있던 성으로 북한산성과 함께 도성을 지키던 남부의 산성이었다.

우리나라 산성 가운데 시설이 가장 완벽한 성으로 손꼽힌다. 산성을 쌓았던 목적이 뚜렷했듯이 유사시 임금이 거처할 행궁이 73칸, 하궐(下闕)이 154칸, 도합 227칸이었다.

해발 453미터로 남한산성의 산 가운데 가장 높은 일장산(日長山)은 낮이 가장 길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일장산에 일명 서장대(西將臺)라 불리는 수어장대(守禦將臺)가 있다.

인조 2년(1624)에 남한산성을 축조할 때 동서남북에 세운 네 개의 장대 중 제일가는 장대였으며 그때 세운 장대 중 남아 있는 유일한 건축물인 이 장대는 성곽을 따라 멀리 내다보며 적을 감시하고 주변을 살피기 위해 세워진 목조 2층 건물이다.

여기에 서면 성안이 환하게 내려다보이고 멀리 양주, 양평, 용인, 고양, 서울의 풍경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이곳 수어장대는 조선의 16대 임금 인조가 병자호란 당시 45일 동안 머물면서 직접 군사를 지휘, 격려하며 청군에 대항해 전쟁을 펼치다가 삼전도에 나아가 항복하였던 치욕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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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사단법인 우리땅걷기>의 대표로 현재 우리나라에 불고 있는 걷기 열풍을 이끈 도보답사의 선구자다.

1980년대 중반 ‘황토현문화연구소’를 설립하여 동학과 동학농민혁명을 재조명하기 위한 여러가지 사업들을 펼쳤고, 1989년부터 문화유산답사 프로그램을 만들어 현재까지 진행하고 있다.

한국의 10대 강 도보 답사를 기획하여 금강에서 압록강까지 답사를 마쳤고, 우리나라의 옛길인 영남대로와 삼남대로를 도보로 답사했으며, 400여 개의 산을 올랐다.

현재 소외된 지역문화 연구와 함께 국내의 문화유산 답사 프로그램과 숨은 옛길 복원 등의 사업을 진행 중이다. 또한 『조선을 뒤흔든 최대의 역모사건』, 『한국사의 천재들』, 『똑바로 살아라』, 『그곳에 자꾸만 가고 싶다』, 『대한민국에서 살기좋은 곳 33』, 『가치있게 나이드는 연습』 등 40여 권을 집필한 대한민국 대표작가다.

그는 독학으로 문학, 고전, 역사, 철학 등을 섭렵한 독서광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가 40년 간 1만 권이 넘는 독서와 걸어온 길에는 깊이 있는 삶의 통찰이 담겨있다. 그래서인지 함께 걸었던 사람들은 그의 글과 이야기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네이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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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제웅
눈이덮인남한산성은언제보아도아름다운산성과어우러져이명산을품고살아가는성남시민은참으로복받은시민이다철거민의아픈과거를묻어두고발전한성남시민의자부심으로살아가야겠지요설경사진잘보고갑니다
(2013-12-16 14:5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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