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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에서 가을과 만나다문화재청 '사진찍기 좋은 가을 풍경 문화재 30선'에 선정되기도 해
원정연 기자  |  helpwjy@sn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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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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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낮, 스님도 마을 사람도 인기척이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이 젖고 있다... 마치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제4대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역임했던 고(故) 혜곡 최순우(1916~1984) 선생의 책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에 실린 <부석사 무량수전>은 부석사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글이다. 영주 부석사를 가보지 못한 사람도 무량수전(국보 제18호)의 배흘림기둥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만큼 유명하다. 하지만 온전한 이미지로 무량수전을 머릿속에 떠올리는 사람 역시 드물다.

   
▲ 무량수전에서 내려다 본 부석사와 태백산맥 자락
   
▲ 부석사로 향하는 길은 온통 은행나무가 만들어 낸 노란빛깔이다
   
▲ 영주 부석사 당간지주(보물 제255호)

가을이 깊어가는 10월의 늦은 어느 날, 카메라 하나를 둘러메고 무작정 영주행 버스에 몸을 싣는다. 성남터미널에서 1일 6회(07:20, 09:20, 11:30, 13:50, 16:10, 18:20) 운행하는 시외버스는 고속도로를 달려 영주까지 2시간 30분 만에 도착했다.

부석사(浮石寺)는 신라 문무왕 16년(676) 중국에서 유학한 의상대사가 화엄종을 들여와 왕명을 받들어 창건한 화엄종찰로 삼국사기에도 기록이 남아있다. 이후 고려 공민왕 7년(1358) 왜구에 의해 불 타 소실된 것을 우왕 2년(1376) 재건되고 이듬해 조사당이 재건됐다. 절의 이름은 무량수전 서쪽에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가 서로 붙지 않고 떠 있는 돌(浮石)이라 한데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절 입구에서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까지 이르는 길은 흙과 돌멩이들이 섞인 비탈길이다. 길의 좌우에 늘어선 은행나무는 머리 위로 노란 터널을 이루고 바닥에는 떨어진 은행잎과 함께 열매가 밟히면서 특유의 냄새가 진동한다. 발길은 언덕을 향해 끊임없이 계속되고 시선은 연신 하늘을 향한다. 은행나무 너머로 조금 더 시선을 넓히면 빨간 과실을 달고 있는 사과나무 밭이 눈에 들어온다.

오르는 길 왼편으로는 한국 사찰의 당간지주 가운데 가장 세련된 명작으로 평가받는 통일신라시대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높이 4.28m의 당간지주가 자리하고 있다. 뒤이어 지국(持國), 광목(廣目), 증장(增長), 다문천왕(多聞天王)의 사천왕이 지키고 있는 천왕문에 이르면 그동안 이어졌던 비탈길이 끝나고 비로소 부석사 경내에 들어서게 된다. 이제부터는 계단의 연속이다. 단풍보다 화사한 알록달록한 등산복을 입고 도착한 이들 중 일부는 다시금 발걸음을 돌려 내려갔다.

108계단으로 구성된 아홉 단의 석축은 극락에 이르는 화엄의 구품정도(九品淨土)를 상징한다. 이는 다시 천왕문에서 요사채까지의 하품단(下品壇), 요사채에서 범종루까지의 중품단(中品壇), 범종루에서 안양루까지의 상품단(上品壇)으로 구분되면 안양루를 지나면 비로소 부석사의 절정인 무량수전에 도달하게 된다.

   
▲ 범종루 앞에서 바라본 안양루와 무량수전
   
▲ 부석사 무량수전(국보 제18호)와 석등(국보 제17호)
   
▲ 삼층석탑에서 바라본 무량수전과 안양루
   
▲ 고려 공민왕이 쓴 것으로 전해지는 무량수전 현판과 배흘림기둥
   
▲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 화창 사이로 바라본 무량수전 현판
   
▲ 무량수전 뒷편에 자리한 부석(浮石)
   
▲ 의상대상의 진영을 모신 조사당(국보 제19호)
   
▲ 자인당(왼쪽)과 응진전. 응진전 우측 언덕에는 나한상을 안치해 둔 단하각이 있다.
   
▲ 부석사 범종루 앞에서 만난 가을

 

안동 봉정사 극락전과 함께 현존하는 목조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로 손꼽히는 무량수전(無量壽殿)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배흘림기둥 위에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한 구조를 간결한 형태로 올린 주심포집이다. 배흘림기둥은 기둥의 가운데 윗부분을 불룩하게 부풀려 곡선미를 드러내면서 마치 기둥에 탄력이 있는 듯한 느낌을 주면서 무거운 지붕을 사뿐히 받치고 있는 인상을 준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의상대사가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그를 흠모한 여인 선묘가 의상대사의 무사 귀국을 기원하며 바다에 몸을 던져 용이 되었고 이후 부석사 터에 있던 많은 이교도들이 절을 지으려 할 때 방해하자 선묘신룡이 나타나 조화를 부려 바위를 공중으로 들어올려 물리치고 무량수전 뒤에 내려 앉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무량수전 내부에는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아미타여래좌상이 건물의 방향과는 다른 동편을 향해 결가부좌(結跏趺坐)의 자세로 앉아 있다. 불상 높이 2.78m, 광배 높이 3.8m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수인(手印)을 취하고 있는 소조불상으로 통일신라시대의 불상 양식을 담고 있는 고려 초기의 불상이다.

무량수전 오른쪽 언덕에 자리한 삼층석탑을 돌아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의상대사의 진영을 모신 조사당(국보 제19호)과 자인당, 응진전을 만나볼 수 있다. 조사당 처마 밑에는 의상대사가 꽂은 지팡이가 자란 것이라는 전설이 있는 선비화(禪扉花)가 철조망 안에 자리하고 있다.

부석사에 내려오는 길에는 유독 붉은 자태를 자랑하는 홍옥을 비롯해 영주의 특산물인 사과를 판매하는 판매대가 나열해 있다. 사과 하나 손에 들고 부석사에서 맞이하는 가을의 맛은 달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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